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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타티풍 세상에서 연애하는 카우리스마키형 인간들, <곤돌라>

이웃의 포크 개수까지 모두 알 것 같은 조지아의 산간 마을. 이곳은 오직 승하차 지점에서 30분 간격으로 각 한대 운행되는 곤돌라를 통해서만 왕래가 가능하다. 곤돌라 승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바(마틸드 이르만)는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 곤돌라 정거장에 취직한다. 이바의 선배 승무원인 니노(니니 소셀리아)는 이직 준비에 한창이다. 마을을 벗어나 항공기 객실승무원이 되려는 계획을 실행하려던 찰나, 니노는 갓 입사한 이바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노동자 착취와 여성 직원을 향한 흑심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고용주(주카 파푸아슈빌)로 인해 두 사람은 근무 중 오직 두대의 곤돌라가 하늘 위에서 교차하는 순간에만 만날 수 있다. 처음엔 창밖 너머로 눈빛만 스쳤던 두 여성은 이윽고 따로 체스 두기, 코스튬플레이와 악기 합주로 화답하기 등 각자의 곤돌라에서 시그널을 보내며 감정적인 교류를 이어간다. 단 둘뿐인 세상에서 사랑을 이어가던 어느 날, 니노는 이바에게 항공 승무원으로 이직하려는 계획을 들킨다.

협곡의 위아래만 왕복하는 곤돌라의 단순한 동선이 얼마나 재밌을까. 파이트 헬머의 신작 <곤돌라>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 관객이 할 법한 걱정을 기우로 만든다. 영화는 곤돌라가 지닌 태생적 한계를 다양한 변용으로 극복해내는 엔터테인먼트인 동시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데이트 무비다. 우선 영화의 오락성은 작품의 형식이 보증한다. <곤돌라>는 국내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헬머의 전작 <투발루>(2000), <브라 이야기>(2020) 등과 마찬가지로 무성영화다. 문자가 소통의 도구이지만 언어를 발화하지 않는 <곤돌라> 속 세상은 수많은 볼거리들로 백 마디 말을 대신한다. 우선 고전 무성영화를 감상하는 큰 즐거움인 슬랩스틱코미디가 2020년대의 배우들을 통해 재현된다. 이들의 슬랩스틱은 버스터 키턴의 애크러배틱보단 찰리 채플린류의 야단법석에 가깝다. <곤돌라>가 성차별, 착취적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근로 환경을 다루어서만은 아니다. 두 주인공을 비롯해 영화를 보고나면 얼굴을 모두 외우게 되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몸짓은 분명 채플린의 영화처럼 현실의 그것보단 훨씬 밝고 과장돼 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동화적이며 목가적인 작품의 공간적 배경과 정확히 맞물려 웃음을 자아낸다. 비행기에서 배로, 버스에서 로켓으로 변하는 곤돌라의 다양한 디자인과 그 안에서 각 교통수단의 운전사를 정교하게 모방해내는 두 배우의 마임이 대표 사례다. 영화 후반 가지각색의 가전 도구를 활용한 마을 사람들의 난타 교향곡 역시 음률과 이를 연주하는 몸짓의 총화로 영화적 감흥을 자아내는 예시라 할 수 있다. 한편 일방향을 오가는 곤돌라의 동선을 역이용해 영화가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로 수평 트래킹으로 곤돌라의 운행을 포착하는 영화는 종종 케이블 아래에서 곤돌라를 여전히 신기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그런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부응하는 곤돌라 승무원들의 시점숏을 잊을 만하면 짚는다. 수평선과 수직선을 자유롭게 교차하며 입체감까지 구현하는 <곤돌라> 속 ‘곤돌라’는, 오프닝크레딧과 엔딩크레딧의 등장 방식에도 섬세하게 적용돼 있다.

close-up

영화 속 반복되는 스코어 또한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선율로 가득하다. 파이트 헬머 감독은 영화 속 음악의 중요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사가 없을 때 사운드는 영화에서 예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언어가 없기에 청각을 위한 공간이 열리고, 본격적으로 음향을 ‘디자인’할 여지가 생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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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공장 소녀>,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1990

<곤돌라>의 미장센은 아기자기한 자크 타티의 영화와 비교되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하루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데드팬 코미디에 가깝다. 이들은 카우리스마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노동계급에 위치해 있고 일상의 작고 귀한 희망을 상대로부터 찾는다. 더군다나 <성냥공장 소녀>는 무성영화의 형식을 차용한 카우리스마키의 노동자영화라는 점에서 <곤돌라>와 맥이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