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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stage] 이자람 판소리 <눈, 눈, 눈>

사진제공 LG아트센터

판소리 무대를 직접 관람한 것은 처음이었다. 신명이 이런 걸까. 공연 도중 입 밖으로 탄식과 경악이 절로 튀어나온 것도 모자라 생전 처음 ‘얼씨구!’ ‘잘한다!’와 같은 추임새를 흥에 겨워 무조건반사처럼 뱉어냈다. 짐작건대 <기차의 도착>이나 <대열차강도>를 처음 본 관객의 마음이 이랬을 것이다. 소리꾼이며 창극의 음악감독이고, 연극·뮤지컬 배우인 동시에 로커인 이자람이 5년 만의 신작 <눈, 눈, 눈>의 초연 무대를 가졌다. 일찍이 브레히트, 헤밍웨이, 마르케스의 희곡과 소설을 판소리로 재해석해 파란을 일으킨 그가 이번에 선택한 작품은 톨스토이의 단편 <주인과 하인>이다. 1800년대 성탄 축제 주간. 한밤중에 부호 바실리는 고랴츠키노 숲을 매입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추위보다 매서운 것은 바실리의 욕심이다. 그는 과묵한 일꾼 니키타, 충직한 종마 제티를 재촉해 숲을 향해 달리지만,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는 이들의 눈을 멀게 해 목적지 이외의 곳으로 헤매게 만든다.

고수의 장단과 소리꾼의 사설이면 서울 강서구의 공연장은 영하 28도의 러시아 촌락이 됐다.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아닌데도 롱숏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오가는 것처럼 눈앞에 대자연과 그 앞에 모골이 송연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은 단연 운율과 심상 모두를 문장마다 생생히 살려낸 작가이자 퍼포머인 이자람의 공이다. 그는 캐릭터가 쉬어갈 때엔 천연덕스럽게 물을 한 모금 마시는 등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조차 재담의 일부로 활용하는 궁극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였다. 익살과 애수를 오가던 <눈, 눈, 눈>은 끝내 고요한 설원에서 운명의 종막에 다다른 인간의 허무를 풀어낸다. 객석은 일순간 너나 할 것 없이 깊이 침묵했다. 그건 관객이 이야기와 무언으로 합의한 임사체험과 다름없었다.

기간 4월7~13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시간 월~금 오후 7시30분, 주말 오후 4시, 목 공연 없음

등급 12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