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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양성을 위한 연대회의` 부회장 로버트 필론

CCD? 경제지표나 전자회로의 약자가 아니다. ‘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문화 관련 NGO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단체다. ‘문화다양성을 위한 연대회의’로 불리는 이 단체는 지난 1998년 캐나다의 영화, 방송, 음악, 공연, 출판인들에 의해 결성됐다. “문화창작물이 국제무역 논리에 의해서 지배되어선 안 된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는 이들은 지난해 캐나다 정부로부터 “통상협정에서 시청각 서비스 분야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끌어내면서 주목을 받았다.

로버트 필론(55)은 이러한 CCD의 출범을 주도한 당사자. 대학에서 매스미디어 경제학을 가르치던 그는 문화산업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다 NGO 활동에 ‘귀의’했다. 현재 CCD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4년 동안 각국을 돌면서 정부 관료들에게는 ‘압력’을 행사하고, 곳곳의 NGO들과는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액티비스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다. 그의 이번 방한은 KCCD(Korean 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 한달 전,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문화개혁시민연대 등 한국의 문화 관련 시민단체들도 문화다양성을 지켜내기 위한 둥지를 마련했고, 그는 KCCD가 열었던 첫 번째 행사인 세미나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번 행사에서도 그는 “자국 언어로 된 영화, 음반, 책을 볼 수 없는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느냐”며 “문화창작물은 굳이 생산하지 않아도 수입하면 되는 공산품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통상업무를 담당하는 각 나라의 관료들이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답만을 내놓는다고 비판한다. “관료들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미국으로부터 스크린쿼터 폐지 또는 축소 압력을 받고 있는 한국의 관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며 그는 관료들이 말하는 ‘현실론’이 변명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두드려보지도 않고 길이 없다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혼자 돌파할 힘이 없다면,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끼리 힘을 모으면 된다. 답은 이미 주어져 있고, 의지가 문제다.” 그는 한국 정부가 현재 46개국 문화관광부 장관들이 모여 무역협정에서 문화영역을 제외하자고 합의한 회의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염려했다.

그가 내놓는 구체적인 방안은 ‘문화다양성을 위한 새 국제기구’의 구성이다. 여기서 법적효력을 갖는 협의안을 마련해야만 세계무역기구(WTO)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정부가 WTO에 공식 입장을 전해야 하는 내년 3월까지, KCCD는 문화다양성을 위한 새 국제기구 구성뿐만 아니라 “시청각 서비스 분야를 WTO에서 논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끌어내기 위해 “정부를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압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칠레에서 있었던 NGO 회의에 참석한 뒤 곧장 한국으로 날아온 그는 30시간의 비행으로 인한 여독이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할리우드의 전세계 지배가 가져올 문화적 재앙”에 대해서 쉬지 않고 경고했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전진환 jungjh@hani.co.kr